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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영 외교통상부 다자통상국장은 2월9일치 ‘왜냐면’에 기고한 글에서 “(일부 농민단체와 국회의원의 주장에 대해) 정책 결정은 정확한 사실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함에도 그릇된 인식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안 국장의 ‘그릇된’ 인식을 비판하고자 한다.

첫째, 안 국장은 “칠레는 세계 24위의 농산물 수출국임으로 농업강국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시 우리 농업의 최대 피해 예상 부분인 과수류를 보자. 칠레는 포도수출 세계 1위, 자두 2위, 사과·배·키위 3위 등 과실 수출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나라다. 2천 헥타르(㏊) 이상의 기업농들이 재배면적의 60%를 차지하며 미국계 다국적기업인 돌(DOLE) 등 6대 메이저가 전체 수출 물량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고작 재배면적 1~10㏊ 미만의 한국 농민들이 엄두를 내지 못할 규모화와 체계를 가진 농업강국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또 “성수기 포도 등은 (수입 품목에서) 완전히 제외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칠레의 농산물 생산, 유통 여건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오류다. 6대 메이저들은 생산 후 최첨단 포장센터에서 선별, 냉장, 포장을 거쳐 수출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최첨단 기술로 포장을 마친 포도가 6월에 수입돼 3개월 냉장 보관된 뒤 우리나라의 포도 성수기인 8~9월에 싼값으로 출하될 수 있음은 불 보듯 뻔한 이치다. 그는 또 “일부 과수분야 피해가 10년간 최대 약 6천억원 정도로 농업에 사활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과일 재배의 한 부분이 도태되면 다른 과일로 재배가 몰려 결국 함께 도산한 과거의 도미노 현상을 돌이켜 보면 이것 또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둘째, 안 국장은 “보완 대책으로 예상 피해액의 두배나 되는 1조2천억원의 특별기금을 주 내용으로 하는 에프티에이 지원 특별법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42조원을 농촌에 투자했음에도 농업이 파탄에 이른 지금 1/42에 불과한 자금으로 지원책을 마련해서 또다시 무슨 대책이 서겠는가 그는 또 “비준과 연계한 농어촌부채경감특별법 등을 마련했고 10년간 119조원 규모의 종합적인 농업, 농촌 지원대책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지난 정부에서 실시한 농어촌 부채 경감으로 우리 농민이 지난날보다 잘 살게 되었는지를 돌이켜 보면, 답이 나오는 이야기다.

안 국장의 주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미 과수단체들이 보완대책을 환영하며 비준안이 확정되기를 희망한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농민단체들은 ‘선 대책 후 비준’을 정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이 대책안의 통과마저 끝까지 에프티에이 비준과 연계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이는 농민단체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본인은 과수분야에서 최대 피해를 입을 포도농민들의 모임인 ‘한국포도회’의 임원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포도회가 “비준안이 확정되기를 희망하는 단체”로 발표됐지만, 2003년 한국포도회 회원들이 사전에 동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에 의해 ‘서둘러’ 이런 내용이 발표됐다. 포도농민들이 총회 때 이를 알고 희망 단체 중에서 한국포도회가 제외되기를 강력히 요청했다는 점을 밝혀 둔다.

셋째, 안 국장은 “체결된 협정은 통상적으로 1년 이내에 비준하는 것이 상례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양국 산업 전반의 이해가 일치할 때의 이야기다. 각 부문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에는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길게는 5~10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비준안이 지연돼 국가 신인도가 하락할 것을 우려한다. 국가 간의 신인도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농민과 정부 간의 신인도도 중요하다. 이런 부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비싼 공산품을 수출하고 값싼 농산품을 수입하면 된다는 비교우위론자들의 주장이 득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농업을 포기함으로써 치러야 할 대가는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이 대가는 결국 국민의 혈세로 지급될 것이기에 국민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다. 식량자급도 하락으로 먹거리부터 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망국적인 앞날이 기다리고 있다. 농업은 ‘천하지대병’(天下之大病)이 아니라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어야 한다.